코인?
수저색깔 바꿔주는
'지니'!

1961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아폴로 프로젝트 당시 "이제 달나라로 가자"고 외쳤다.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오늘 MZ세대도 '달까지 가자'를 외친다. MZ세대의 '달까지 가자'는 지난해 장류진이 펴낸 소설 제목의 은유이다. 소설은 시쳇말로 '인생 노답' 인 흙수저 3인방의 '이더리움 코인' 투자기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별로 달라질 게 없는 삶. 기성세대는 코인 투자를 '미친 짓'이라고 핀잔을 던지지만 주인공은 독백하듯 "난 이게 우리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MZ들에게 '달'은 이상향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의 경제상태(소득, 자산, 부채, 소비)는 X세대(1965~79년생)와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에 비해 훨씬 취약했다. 근로소득과 금융자산 증가폭은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낮은 반면 부채는 주택마련 목적의 금융자산 차입 증가로 크게 높아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MZ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증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역대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심각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뉴시안이 지난 7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MZ세대 400명을 대상으로 재테크 여부를 물은 결과 65%가 '하고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소득이 없다고 응답한 117명중 43.6%가 재테크를 하고 있었다.

MZ는 왜 재테크에 목숨을 거는가. 뉴시안은 서로 다른 투자 방법을 선택한 MZ세대 3명을 직접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삶, 투자 동기, 실적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 대상자는 대학생 정성현(26)씨와 직장인 이정현(30), 전호현(36)씨다. 셋은 각각 예-적금, 주식, 암호화폐에 적지않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었다. 다만 부동산의 경우 종잣돈 부담이 커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이정현씨는 셋중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투자 계기는 중학생 때 부모가 만들어 준 통장이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예-적금을 시작했다. 정성현씨는 군 간부로 복무하며 통장에 모아둔 월급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친구 권유로 주식 투자를, 전호현 씨는 지인이 300%라는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을 본 뒤 코인에 발을 들여놨다.

투자 계기는 모두 달랐으나 '경제적 자유'라는 지향점은 비슷했다. 이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돈 때문에 선택권에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정현)”,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경 쓰지 않고 한 턱 낼 수 있는 삶 또는 가격표를 보지 않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는 삶(정성현)”이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금융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해도를 보였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매체로부터 적극적으로 정보를 취득했다.

실제 대다수의 MZ세대는 집값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축을 통한 자산 형성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급여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투자행렬에 가세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의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는 다른 여타 세대들과 비교했을 때 취업난이 심해 근로 소득 증가세는 가장 부진할 뿐 아니라 금융자산 증가세 역시 가장 정체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 마련을 위한 부채는 가장 많고,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로 인해 연금보험 등 저축성 보험에 대한 관심 역시 가장 높았다.

실제 2030의 노동소득증가율은 2%대 불과하지만 최근들어 물가상승률은 6%대를 넘어섰다. MZ세대 입장에서 재테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MZ세대는 흔히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평가받는다. 자신들도 '개천에서 용은 커녕 미꾸라지도 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깊다. 이 때문에 '월급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공격적인 저축과 투자 없이는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깔려있다. 책 <금융전문가가 알려주는 MZ세대 재테크 전략>의 저자 박영섭 박사는 "기성세대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부를 쌓아 올릴 수 있었지만 MZ세대들은 200만원대의 월급을 받으며 집을 사려면 100년이 걸린다"며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상자산, 조각투자 등의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씨는 "최근 집값이 다소 떨어졌다 해도 서울에 집을 갖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노동소득만으로 내집마련은 불가능한 시대"라며 "내가 생각하는 '평균의 삶'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재테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실제로 오픈채팅방에서 추천한 특정 종목을 매수해 3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 채팅이나 투자 권유 문자가 '사기성 짙은 수단'이란 것을 모르지 않지만 '소액투자'의 경우 투자 경험을 위해 기꺼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자를 시작할 때 유명인이나 지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미디어에서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이 '시드머니 500만원으로 시작해 1000억 원의 자산가가 됐다'라는 콘텐츠를 보여준다"며 "그걸 보면 현타가 오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상은 온통 투자 얘기로 들끓는다. MZ세대들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예금·적금·주식·부동산은 물론 SNS·앱테크·명품 리셀·암호화폐, NFT 등등 다양한 투자처가 존재한다. 본업 외에도 여러 개의 부업을 병행하는 'N잡러'로서 경제적 자립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MZ세대들을 투자로 내몬다. 실제 요즘 2030들의 머리 속에는 "직장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월급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뉴시안이 만난 투자자 3명의 성적은 편차가 컸다.

이 씨는 “원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한 ‘예금’과 ‘적금’에만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월급의 일부를 적금으로 이른바 ‘풍차 돌리기’하고, 만기된 적금은 예금으로 넣어 재테크를 한다. 지난 2년간 그의 수익률은 연 2%대 수준. 2년여에 걸쳐 2천만원 이상을 모았다. 주식이나 코인 공부를 통해 종잣돈이 5천만원 정도되면 재테크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있다.

주식을 하고 있는 정씨의 투자 수익률은 들쑥날쑥하지만 종합적으로는 80%에 달해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는 애초 코로나 폭락장에 운좋게 주식을 시작해 수익을 꽤 많이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 종료를 기대해 매수했던 화장품, 면세점·여행사 등의 주식이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적지않은 손실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하락장이라는 점을 이용해 'FANNG 인버스 X3'에 관심을 갖고 반짝 투자하기도 했지만 결국 증시하락기에 물리면서 다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 씨는 "과거에는 모든 자산을 100% 주식으로 들고 있었지만 시장이 안 좋아진 뒤로 조금씩 매도해 30%는 현금으로, 10%는 미국 달러로, 60%는 주식 및 ETF로 보유하고 있다"면서 “대학 졸업 이후 일정한 노동 소득이 생기면 주식에 더 많이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는 2017년 지인의 권유에 1800만원으로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그는 “한 때 수익률이 -93%까지 내려가 참담했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계좌를 닫아놨더니 어느 순간 회복해 현재는 4000만원까지 올라 220%의 수익률을 봤다”고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 망한 것을 많이 봤던 터라 스스로 생각해도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코인의 미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루나’ 사태 등으로 인해 가상자산 투자의 문제점이 보완된다면 암호화폐 시장이 더 큰 펀더멘탈로 장기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며 앞으로도 암호화폐에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 저금리, 그리고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 상승에 마주하게 된 MZ세대는 기성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투자 패턴을 보이고 있다. 기성세대를 관통했던 '평생고용'이나 '참고 버틴 자가 이긴다'는 인식은 요즘 MZ세대에게는 없다.

MZ에게 이직은 다반사이다. 평생직장 개념도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분명히 약속 받을 수 있는 단기적인 보상을 중시한다. "지금이 가장 싸다. 그래서 조금 떨어지면 바로 지금 사야 한다(buy the dip)", "존버는 승리한다"를 외치는 MZ들은 흔히 '한탕주의자' 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미래가 불안한 MZ에게 투자는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이다. 실제 MZ의 이런 움직임을 꿰뚫은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개개인 맞춤형 금융 상품을 추천하며 M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을 연금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생애주기형 펀드(TDF)의 인기도 높다.

박영섭 박사는 "MZ들이 미래를 대비하려면 조금씩이라도 투자하고 싶은 기업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며 "여기에 올바른 경제 관념과 금융 지식을 습득하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MZ세대들의 이같은 성향은 자신들의 취약한 경제기반도 무관치 않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MZ세대의 취약한 경제상황은 향후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당국에서는 MZ들의 생활방식 취향 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점검하면서 소득증가와 부채감소 등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평생직장이요?
꼰대들 생각이지요"

조예원(28·가명) 씨는 이른바 '프로이직러'이다. 그만큼 이직이 잦다는 얘기이다. 직장생활 8년차인 그는 현재까지 9번이나 회사를 옮겼다. 그동안 일해온 곳은 공공기관,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 다양하다. 현재는 기업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조만간 그만둘 생각이다. 그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왜 힘든 상황을 참아가면서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며 "언젠가 퇴사할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는게 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업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신규입사자의 1년이내 퇴사율'은 28%였다. 2년 전인 2019년 평균 퇴사율 17.9%와 비교하면 10% 이상 늘어났다. 기업들은 MZ세대의 조기퇴사가 잦은 이유에 대해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이기 때문'(60.2%)이라고 여겼다. 뉴시안이 여론조사기관인 지난 7월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MZ세대 400명에게 '직장의 의미'를 물어본 결과 59.5%가 '필요에 따라 이동이 가능한 곳'이라고 응답했다. '평생 몸 담을 곳'이라고 답한 비율은 25.8%에 그쳤다. 회사를 평생직장이자 삶 그 자체로 여기며 살아왔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접근법이다.

국내 굴지의 신문사에 다니던 김영수씨(54·부국장·가명)는 최근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 그는 퇴근뒤 우연히 서울 광화문 길거리에서 만난 젊은 기자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정작 젊은 기자는 응답도 하지않은채 그냥 지나갔다. 그는 며칠뒤 회사에서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일과 끝났는데 길거리에서 후배에게 아는 체 하는 '간큰 꼰대 선배'가 있다"

MZ세대가 기업내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서 회사문화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업무를 마쳐도 선배가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던 문화, 오래 앉아 있어야 성실하다고 평가됐던 기성세대의 문화는 이제 '꼰대문화'로 취급받는다.

MZ세대에게 0순위 직잡은 '워라벨이 보장되는' 곳이다. <사람인>이 2020년 실시한 'MZ세대가 가장 입사하기 싫은 기업 유형' 설문조사에서 1위는 '야근·주말출근 등 초과근무가 많은 기업(31.5%)'이었다. 다음으로 '업무량 대비 연봉이 낮은 기업(23.5%)'이 꼽혔다. 이유는 '육체·정신적 건강을 잃을 것 같아서'(44%), '개인 생활이 없을 것 같아서'(38.7%) 였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퇴근 후 업무 연락'은 최악이다. 자신의 개인시간이 중요해 퇴근 후 메시저 등으로 업무 지시 받는 것은 곧 스트레스다. 이는 전 세계 젋은 직장인들의 공통 관심사다. 현재 필리핀과 프랑스·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업무시간 외 업무연락을 법으로까지 금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카톡 금지법'이 논의됐지만 '근로자 보호를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업무 유연성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맞서 법제화되지는 않았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업무용 핸드폰과 멀티프로필 등이다. 회사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아무도 나에게 연락할 수 없도록, 나를 아무도 건들이지 못하도록 완벽한 '직장인 OFF'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다.

실제 회사원 주상원씨는 올해 여름 휴가 때 '휴가 중이니 그만 톡 보내!'라는 문구가 담긴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설정했다. 상원 씨는 "휴가기간이면 꼭 거래처에서 전화가 와서 업무를 처리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며 "휴가 만큼은 회사에 대한 고민없이 푹 쉬고 싶어서 프로필 사진도 바꾸고 상태메시지에 '휴가중'이라는 문구도 썼다"고 했다.

최근 회사에서 달라진 모습 중 하나는 바로 '회식'이다. 기성세대에게 회식이란 반갑진 않지만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다. 저녁 약속이 있더라도 상사가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입니다'라고 하면 약속을 취소하고 무조건 참석해야만 했다.

지금은 회식도 MZ세대 성향에 맞춰졌다. 퇴근 후 저녁 회식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점심으로 앞당겨졌다. 1차에 이어 2·3차까지 이어졌던 회식은 팀별 영화관람·문화생활 등으로 바뀌었다. 회사원 김미연(31·가명) 씨는 "20대에 첫 입사했던 회사는 수습기간에 무조건 밤 9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며 "회식이 있는 날에도 술을 마신 후 회사에 들어와 업무를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이 회사를 그만두면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 이 악물고 버텼다"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미련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둬도 내 인생이 무너지는 건 아닌데"라고 말했다.

조예원 씨는 많은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하며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로부터 '왜 한 곳에서 오래 버티질 못하느냐',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 '이제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냐' 등의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세대가 변화한 것일까. 이제는 그가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 '박수'를 쳐준다.

MZ세대에게 잦은 퇴사·이직은 흠도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는 곳, 조금이라도 더 편한 삶을 위해 선택한 퇴사는 동료들로부터 열띤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동료가 퇴사하면 '퇴사 파티'를 여는 것도 자연스럽다. 선후배와 동료들끼리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 등을 주고 받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 MD업무를 하다 지난 7월에 퇴사한 박민철(30) 씨는 "퇴사하는 날 책상 정리를 마친 후 부서원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을 담아 견과류 세트를 전해주고 나왔다"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지고 볶으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선물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MZ세대는 '아름다운 퇴사'를 위해 공부도 한다. 관계로 인한 갈등을 힘들어하는 MZ세대는 퇴사할 때도 최대한 갈등 없이, 순조롭게 퇴사하는 것을 꿈꾸고 공부한다. 김나연(33) 씨는 "사직서를 제출하려고 출근한 날 아침부터 너무 떨려서 근무를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난다"며 "상사한테 어떤 말로, 어떤 태도로 사직 의사를 전해야할 지 몰라 유튜브를 보며 오전 내내 연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 삶을 위해서라면 뒤도 안 돌아보는 MZ세대. 기업들은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돈'을 꺼내들었다. 일명 '금융치료'를 하는 것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금융치료'라는 말은 일상어이다. 정확히는 아픈 마음이나 우울한 감정, 스트레스를 돈으로 치료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더라도 월급과 상여금이 들어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월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프로그램에서 건강기능식품회사 CEO인 가정의학과 전문의 여에스더씨가 직원들에게 "금융치료를 확실하게 해주겠다"며 성과급을 지급해 화제를 모았다. 회사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에 보답하기 위해 팀별로 최대 1000만원까지 지급했다.

방송이 나간 후 MZ세대는 '이게 바로 금융치료'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한 직원은 "급여가 너무 적어서 회사 욕했는데 한 달 매출액의 1%를 전 직원에게 N분의 1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3개월 후에 그만두려 했는데 금융치료가 퇴사를 막았다"고 얘기했다.

또 다른 직원은 "나한테 욕했던 상사가 설 명절 앞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봉투를 건내 줬는데 봉투의 내용물을 보고나니 그 때 내가 욕 먹을만 했던 것 같다"며 "마음의 상처가 돈으로 다 나았다"고 웃픈 소식을 올렸다.

MZ세대는 더이상 대가 없는 노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MZ세대의 가치를 따라오지 못하는 회사는 쳐다보지 않는다. '뽑아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외치던 때는 이제 끝난 것이다. MZ세대는 '우리를 뽑으려면 그만큼 대우를 해달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직장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 119' 오진호 집행위원장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들은 어떤 문제들이 금지되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들은 합의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세워야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대에 따라 다르게 요구되는 가치에 대해 기업들이 대응하지 않으면 심각한 갈등과 갑질 문제 등으로까지 야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곳에는
가치·성장·보람이 있다

게임제작사 스타트업 유닉온. 지난 9월초 판교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다란 화이트보드부터 눈에 띄었다. 적혀있는 단어가 흥미롭다. '엉덩이'. 곁에는 '귀여움'이란 단어가 함께 쓰여있다. 직장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장누리 대표(31)는 '신작에 대한 힌트'라고 했다. 휴가를 갔다는 직원의 어지럽혀진 책상 위에는 커다란 타조털 부채가 놓여있다. 마치 회사가 아니라 같은 취향을 가진 젊은이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직원 17명. 평균 연령 32.6세. 일반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유닉온은 찻집 운영 게임인 '모퉁이뜨개방with카페', 정신과 의사가 돼 환자를 상담해주는 시물레이션 게임 '헬프 미!'를 만들었다. 물론 경영상황은 대기업에 비할 바 못된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매월 17명의 급여를 주는 것을 보면 결코 맹탕은 아니다. 곳곳에서 투자를 받았고, 2020년 법인 사업자 등록 기준 매출은 10배 가까이 뛰며 폭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장대표는 프로그래머 출신이 아니다. 예고 졸업뒤 대학에서 게임동아리 횔동을 하다 관심사가 같은 몇몇과 손을 잡고 게임개발을 반복하다 2년전 유닉온을 세웠다. 그가 꾸려가는 유닉온의 사무실은 늘 북적댄다.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떠들고, 메타버스로 마련해놓은 사무실 내 캐릭터들이 숨가쁘게 움직인다. 퇴사율도 낮은 편이다.

그가 몸 담은 판교는 MZ에게 성지 같은 곳이다. 최근 서울 성수동 등에 MZ가 몰려들면서 국내 주요기업의 홍보장터가 되고 있지만 IT기업들의 뿌리는 역시 판교이다. 오히려 기존 전통대기업들도 판교로 이주하는 경우가 잦다. 2021년말 기준 입주기업수 1697개. 상시 노동자 7만1967명. 전체 임직원중 연구개발 인력 34.6%. 입주기업중 87.6%(1487개)가 중소기업이다. 인력구성을 보면 젊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2030이 4만2779명으로 전체의 60%나 된다.

MZ는 왜 판교를 찾을까. 전통기업과는 다른 문화가 있을까. 이들의 말을 들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장대표는 이번까지 창업만 세번째인 이른바 '얼죽창(얼어 죽어도 창업)'에 속한다. 다른 기업으로의 취업은 잠시간의 꿈에서 그쳤다. 틀에 박힌 조직문화가 싫었고, 클라이언트의 한마디에 사장되어야 하는 노력이 안타까웠다. 예고 진학부터 '맨땅에 헤딩'이 몸에 배었다. 다른 곳에서 프로세스를 배워오는 것은 어떻겠냐는 주변에 조언에는"부딪히며 배우는 게 즐겁다"고 대답해 왔다.

그가 판교에 둥지를 튼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게임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다가 입주사간의 네트워킹이 두터운 점에 끌려 눌러앉았다.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활발했고, 넥슨 NDC(넥슨개발자컨퍼런스) 등도 판교에서 열리는 점이 좋았다. 커넥트21(성남콘텐츠캠퍼스)을 들어갔고, 게임 벤처4.0의 활동 등이 전부 판교로 이어졌다.

유닉온에 몸담은 지 2년이 되었다는 ㄱ씨, 유명 게임사에 근무하다 한달 전 입사한 ㄴ씨는 "회사 분위기 덕분에 몸 담게 됐다"고 말했다. 주 40시간 근무. 8시간 일하는 원칙만 존재하고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다. 회사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장 대표의 철학이 담겼다.

이는 최근의 MZ들의 기업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뉴시안이 지난 7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MZ세대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선호도' 조사 결과 51.8%가 전통대기업보다 IT 기업을 꼽았다. 전통대기업 선호도는 28.8%였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선호도가 19.5%로 집계됐다. 대학졸업을 앞둔 한 취준생 김여운씨(23)는 "MZ세대는 조직을 앞세우기보다는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쪽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판교에 소재한 주요 IT 기업의 팀장급 이해운씨(가명)는 "10년 전 우리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을 바라고 있었다면 그때 우리의 나이인 MZ세대가 '네카라쿠배당토'로 눈길을 돌리는 점도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애들'과 기성세대의 큰 차이점은 미래 확장 가능성에 얼마나 더 후한 점수를 주는가"라고 말했다. 그때 그시절 우리가 소속돼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중요시 했다면 지금의 MZ세대는 회사가 성장하면서 누리는 개인적 보상, 더 나아가 성취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입사해 복사 업무를 맡거나, 회의록 정리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동기부여의 계기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들은 결과와는 상관없이 예스(YES)와 노(NO)의 명확한 피드백을 원한다고 했다. IT 기업의 유연함을 대다수의 매체로 익혀왔으니 좀 더 주도적인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본인들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고도 말했다.

물론 소득별 성향 차이는 존재한다. 뉴시안 설문조사 결과 월평균 소득 400만원 이상 집단은 전통적 대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평균보다 높은 35.6%였다. 반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응답자의 경우 27.3%가 스타트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이들은 '안정적'인 기업을 선호한 반면, 보수가 낮은 경우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원한다고 할 수있다. 이는 눈앞의 돈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IT 관련 스타트업 입사 2년차인 장이주(26)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유능하고 젊은 리더들이 주요 기업의 요직에 있다는 다수의 뉴스를 접했고,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게 됐다"며 "개인이 가진 능력은 한정적이니까 회사의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이라는 설명했다. 결국은 누구보다도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를 바라며, 스타트업은 결국 카카오·당근마켓·넥슨으로 향하는 '퀘스트'라는 설명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자유로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경우도 많다. 미래 확장 가능성을 보고 스타트업에 몸 담았다가 다시 대기업으로 이직한 김이수씨(34)는 "IT 기업 특성상 전통적 대기업과 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다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고기존 대기업처럼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 되레 업무 효율성이 뒤떨어지는 대기업병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퇴사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결핍과 간절함, 그리고 열망을 안고있는 MZ세대들에게 판교는 꿈을 영글게하는 중핵센터라는 점이다.

이는 '인서울 진학', '대기업 취업'으로 성공의 잣대를 그어대는 기성세대의 인식과는 크게 다르다.

판교에 위치한 IT 대기업의 한 인사팀장은 "MZ세대들이 중시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 자신의 성장, 자신의 대한 보상"이라며 "이런 MZ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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